in Issue & Trend
트럼프가 떠나도
무역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채드 바운(Chad Bown)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세계 무역질서를 뒤흔들고 있지만 채드 바운(Chad Bown)은 그보다 더 오래 남을 문제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특정 국가에 집중된 생산과 공급망 의존이 경제적 압박의 수단이 되는 시대, 한국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한경협 주최 ‘신통상 질서의 미래: 한국의 기회와 도전’ 국제 세미나 참석차 방문한 채드 바운을 만나 새로운 무역전쟁의 본질과 한국 기업의 선택을 물었다.
정리 김나연
사진 신규철
최근 《How to Win a Trade War》를 출간하셨습니다. 책에서는 현재의 무역질서 변화를 트럼프 개인의 문제로만 보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고 강조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이 책을 쓴 이유부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은 일종의 ‘경종’을 울리기 위한 책입니다. 지금은 모든 관심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문제가 본질적으로 트럼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에게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면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문제에서 시선이 분산될 수 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중국과 세계 경제의 관계에 있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중국의 비시장경제 체제나 과잉생산능력 같은 문제를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공급망의 ‘일방적인 의존’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공급망은 세계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들은 중국의 공급망에 의존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의존이 실제로 무기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철강이나 알루미늄, 조선뿐 아니라 희토류 영구자석처럼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품목에서도 중국의 생산 집중도가 매우 높습니다. 2025년 중국이 영구자석 수출을 제한했을 때 글로벌 자동차산업 전체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특정 필수재에서 한 국가가 막대한 시장 지배력을 갖고 이를 경제적 압박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정상적인 무역체제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대응해야 할 무역전쟁의 본질이며, 트럼프 대통령이 떠난다고 사라질 문제도 아닙니다. 다음 미국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모두 뒤집더라도 특정 산업에서 중국의 시장 지배력이 커지고 있고, 이를 무기화할 의사와 능력을 갖고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을 것입니다.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하며 “무역전쟁을 한국보다 잘 아는 나라는 많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동시에 중국이 보조금으로 한국의 조선·배터리 산업을 잠식할 때 한국조차 WTO 제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하셨는데요. ‘규칙 기반 체제의 회복’을 기다리는 전략이 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보십니까?
저는 오랫동안 규칙 기반 무역체제를 연구했고 WTO에서도 일했습니다. 그래서 이 체제의 장점뿐 아니라 한계도 잘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규칙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규칙 기반 무역체제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회원국들이 규칙을 지키고, 위반이 발생했을 때 이를 집행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중국이 보조금과 산업정책, 강제 기술이전과 관련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을 때도 이를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일부 WTO 분쟁을 제기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고, 다른 국가들은 사실상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중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바탕으로 조선산업에서 경쟁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배터리산업에서도 보조금과 현지조달 요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지만, 이를 WTO의 분쟁해결 절차를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 삼으려는 대응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보면 과거의 규칙 기반 무역체제가 다시 회복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현실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습니다. 이미 기존 체제가 중국이 제기하는 새로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을 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규칙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국의 산업정책과 공급망 집중 같은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려면, 기존 규칙을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뿐 아니라 그 규칙으로 다루기 어려운 문제에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지까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무역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첫걸음으로 “취약점을 찾고, 비축하라”고 하셨습니다. 지난해 영구자석 사태에서도 미리 재고를 쌓아둔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잘 대응했다고 평가하셨는데요. 기업은 이런 ‘경제안보형 비축’을 어떻게 실무에 적용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디에서 취약한지를 정확히 찾아내는 것입니다. 어떤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의존이 우리를 상대로 경제적 압박의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실제로 방어력을 구축해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가 비축입니다. 지난해 중국이 영구자석 수출을 제한했을 때 모든 기업이 같은 정도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이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비교적 잘 예상했고, 일부 기업은 미리 재고를 확보해 상대적으로 충격을 잘 견딜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재고를 쌓고 비축하는 데는 비용이 듭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비용 자체를 경제안보를 위해 감수해야 할 방어 비용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급망이 실제로 차단됐을 때 기업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어떤 품목을 어느 정도까지 비축할 것인지, 확보한 물량을 실제 산업 수요에 맞춰 어떻게 순환시킬 것인지까지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다른 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대체 공급원’이 바로 한국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새로운 시장과 투자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 의존을 줄이기 위해 각국이 대체 공급원을 찾는 상황에서, 오히려 한국이 그 ‘대안 공급원’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HBM과 조선, 배터리 등에서 한국이 가진 강점은 새로운 무역질서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십니까?
대체 공급원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어떤 국가가 특정 품목이나 산업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을 때, 다른 나라들이 새로운 공급원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그 국가가 오히려 공급을 늘려 세계시장에 물량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가격을 크게 떨어뜨려 새롭게 투자하려는 기업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결국 장기적인 투자 유인을 없애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장에만 맡겨서는 대체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전략적으로 필요한 산업이라면 기업이 가격 하락 국면을 버틸 수 있도록 가격을 일정 수준에서 뒷받침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가 기업의 지분을 직접 취득하는 방식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여기서 중요한 강점이 있습니다.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국가들이 새로운 공급원을 찾을 때, 그 대안 자체가 한국인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AI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 즉 HBM을 만들 수 있는 세계적인 주요 기업 세 곳 가운데 두 곳이 한국 기업입니다. 조선에서도 중국을 제외하면 경쟁력 있게 선박을 공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가 한국이고, 배터리에서도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중국 의존이 무기화될 가능성을 우려해 각국이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지금의 흐름은 한국에 단순한 위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른 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대체 공급원’이 바로 한국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새로운 시장과 투자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CPTPP 같은 중견국 연대가 새로운 해법으로 거론됩니다. 중견국 간 협력만으로 공급망의 무기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또 새로운 산업·통상정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도 있다고 하셨는데, 설명 부탁드립니다.
중견국 연대라는 방향 자체에는 크게 공감합니다. CPTPP 같은 협정은 중견국끼리 무역장벽을 낮춰 새로운 수출시장을 확보하고,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졌을 때 대체 시장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나아가 우려 대상 국가에 대한 관세나 보조금 정책까지 회원국들이 함께 조율할 수 있다면 훨씬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견국 연대만으로 공급망의 무기화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대체 공급원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관세와 산업정책 같은 수단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산업·통상정책을 설계하려면, 비축과 보조금, 수출입 제한 같은 정책수단을 많이 활용해온 중국의 경험도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보호정책과 보조금이 존재하는 동시에 기업 간 내부 경쟁도 매우 치열합니다. 기업들이 서로 경쟁하고 혁신하도록 강하게 압박받고, 수익성이 악화되면 다시 보조금을 통해 버틸 수 있도록 하는 구조가 작동해왔습니다. 그 결과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제품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중국의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중국이 왜 여러 산업에서 기술의 최전선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 국유기업은 반드시 이윤 극대화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 안정이나 국가안보, 시장점유율 확대 등 다른 목표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과거의 반덤핑, 세이프가드, 상계관세 같은 전통적인 무역구제 수단만으로는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정의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정책수단을 고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How to Win a Trade War》를 통해 독자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앞으로 이 논의가 어떻게 이어지기를 바라십니까?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중요한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특히 경제학자와 무역 전문가들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정부에서 정책 담당자들에게 조언하면서, 비축이나 보조금, 수출입 제한 같은 새로운 문제를 결정할 때 참고할 경제학적 분석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경제학자와 무역 전문가들이 현실의 정책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합니다. 비축과 보조금, 수출입 제한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효과와 부작용을 낳는지 더 많은 분석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다소 심각한 이야기만 했지만 실제 책에는 농담도 많이 들어 있습니다. 너무 무거운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