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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새로운 엔진, 뉴 K-인더스트리

다음 30년의 성장,
산업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문승욱 뉴 K-인더스트리 포럼 공동위원장

WTO 시대라는 거대한 파고가 밀려오던 무렵 공직을 시작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문승욱 뉴 K-인더스트리 포럼 공동위원장은 한국 산업이 문법을 바꿔온 고비마다 현장에 있었다. 이제 관건은 정부가 승자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창의와 투자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민간과 국가 전략을 잇는 가교로 뉴 K-인더스트리 포럼을 이끌고 있는 그에게, 한국 산업의 다음 성장 방정식과 포럼이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정리 김나연

사진 신규철

Q. 위원장님께서는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서 산업정책 전반을 총괄하고, 그 전에는 지역 현장과 에너지·중견기업까지 두루 거치며 30년간 한국 산업의 변화를 지켜보셨습니다. 한국 산업의 성장을 가능케 했던 성공 방정식 중 지금도 유효한 것은 무엇이고,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제가 정부에서 일을 시작한 90년대 초는 밖으로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 매진하면서, 안으로는 곧 닥쳐올 WTO 시대의 새로운 질서에 대비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선진국의 발전과정을 모방해 산업별 육성전략을 짜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이 우리 산업정책의 기본이었습니다. 안보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중화학공업 육성을 압축적으로 추진하면서, 정부가 정한 전략분야에 자원을 몰아주는 방식이었지요. 그런데 WTO 체제에서는 그러한 보조금 정책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관세를 낮추고 보조금 관련 법령을 고치면서, 새로운 질서 속에서 우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선진국을 능가하는 기술력을 갖추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당시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이후 우리는 반도체와 자동차 등 선진국이 주도하던 산업에서 오히려 기술경쟁력으로 앞서가는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자유무역이 퇴색하고 경제안보가 부상하는 지금도 우리의 생존전략은 결국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반면 과거처럼 외국 기술을 모방하거나 단순히 공장 설립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입니다.

Q. 위원장님께서는 반도체에 견줄 ‘킬러 기술’을 두 개 이상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바 있습니다. 한편 뉴 K-인더스트리는 유망산업을 새로 찾기보다 기존 산업 전체를 전환하자는 구상입니다. 새로운 전략산업을 육성하는 것과 기존 제조업을 혁신하는 일은 어떤 관계로 설계해야 할까요? 뉴 K-인더스트리 구상 안에서 필요하다고 보시는 ‘킬러 기술’의 예시가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우리 포럼에 참여하고 계신 서울대학교 이정동 교수님이 10여 년 전 서울공대 교수님들과 함께 『축적의 시간』이라는 역작을 출간하셨습니다. 이 책에서 이 교수님은 제조업 경쟁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이 축적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스케일업해 나가는 노력이 우리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현재 여러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특히 생산능력만큼은 세계 선두권입니다. 우리처럼 다양하고 높은 수준의 제조업 기반을 갖춘 나라도 드뭅니다. 이런 제조업의 어느 부문이든 AI와 융합되고 그린에너지 기술로 발전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솔루션으로 스케일업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새로운 킬러 기술이 될 것입니다. 우리 뉴 K-인더스트리 전략은 이러한 스케일업이 인공지능·에너지·제조업 유관 서비스와 융합하면서 새로운 킬러 기술을 창출해낼 역량을 극대화하자는 전략입니다.
물론 이러한 스케일업 기술만으로 미래를 책임질 킬러 기술이 충분히 확보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8월 정부는 민간의 의견을 반영해 ‘7대 SEED’ 미래성장동력 육성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재생에너지,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첨단공급망이 그 대상입니다. 이들은 우리를 비롯해 전 세계가 선점을 위해 노력하는 미래분야로, 우리의 제조역량을 바탕으로 충분히 앞서갈 기회요인이 많다고 봅니다. 이러한 분야에서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책임질 킬러 기술들이 확보될 수 있을 것입니다.

Q. 뉴 K-인더스트리는 인공지능 전환(AX)과 녹색전환(GX), 서비스 혁신(SX)에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인프라 혁신(IX)을 더한 ‘3+1’ 체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5~10년 내에 현실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거나, 위원장님께서 보시기에 시급하게 손을 대야 할 영역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A. 우리나라는 국토나 인구 규모, 부존자원 등 여러 면에서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우리가 가진 뛰어난 인재와 이를 뒷받침한 교육에 대한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는 AX, GX, SX에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지만, 이를 실제 산업으로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뛰어난 공학인재의 확보가 관건입니다. 문제는 과거와 달리 지금은 0.8명대의 낮은 출산율과 공대 기피 현상으로, 과거의 우리나 중국 같은 경쟁국에 비해 미래를 준비할 과학기술·공학 인재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미래기술이 시장에 선도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정부 제도와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는 문제, 자본시장이 긴 호흡으로 미래 분야에 투자자본을 공급할 수 있도록 혁신하는 문제, 전력에너지와 입지, 용수 등 미래기술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문제 역시 지금부터 준비해나가야 할 과제들입니다. 우리 포럼이 이러한 과제들을 묶어 IX라는 기반과제로 제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Q. 최근 AI 데이터센터만 해도 전력·용수 확보와 인허가를 둘러싼 갈등이 세계 곳곳에서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 대형 산업 프로젝트가 현장에서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가장 흔한 병목은 무엇이며, 그 매듭을 풀어본 경험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모든 정책에는 수혜를 받는 대상과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대상이 함께 존재합니다. 다수가 혜택을 받는다고 해서 소수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AI 전환으로 일자리를 잃을 위협을 느끼는 계층은 그만큼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습니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용수 문제 역시, 기존에 전력과 용수를 공급받던 지역이나 산업의 우려가 앞설 것이므로, 신산업을 준비할 때는 이처럼 영향받는 대상과의 소통과 보완대책이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
과거 산업부가 직면했던 갈등 사례로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유치 문제가 떠오릅니다. 제가 직접 담당했던 일은 아닙니다만, 방폐장은 원전 운영에 필수적인 시설임에도 주민들의 환영을 받지 못해 수년간 진척을 내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유치 지역에 여러 인센티브를 제시했고, 이를 받아들인 지자체가 유치 지역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지자체의 신청만으로는 전체 주민의 수용성을 확보하지 못해 결국 선정이 무산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사상 최초로 주민투표 제도가 도입되어, 주민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보완대책이 제시되고 이에 대한 찬성투표를 거쳐 오늘날 경주의 방폐장 사업이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AX, GX 등 뉴 K-인더스트리를 구성하는 여러 ‘X’는 ‘전환’을 의미합니다. 방폐장 유치보다 훨씬 넓은 산업군, 고용계층, 지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화들입니다. 각 전환 과제의 성공전략과 함께, 그 과정에서 부담을 지게 되는 계층에 대한 보완대책도 함께 추진되어야 이른바 ‘정의로운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정부의 대책이나 지원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우며, 새로 성장하는 분야의 주체들이 열린 마음으로 기회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준비와 참여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뉴 K-인더스트리 전환이 가능할 것입니다.

Q. 위원장님께서는 이번 포럼을 민간과 국가 전략을 잇는 가교로 만들겠다고 밝히셨습니다. 그 연결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기업 측에서도 준비해야 할 부분이 있을 텐데요, 정부 정책과 시너지를 내기 위해 기업이 노력해야 할 지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포럼이 할 수 있는 역할도 함께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A. 과거 산업화 초기에는 민간의 역량이 아직 취약해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이 불가피했습니다. 그러나 민간부문 역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오늘날에는, 기업의 창의성과 역량이 먼저 앞서고 정부는 그 노력이 최대한 실현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산업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추진하는 뉴 K-인더스트리 전략 역시, 우리 기업들이 추구하는 내용을 먼저 구체화하고 이와 연결되는 정부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한국경제인협회는 한국을 대표하는 다양한 기업들을 회원사로 두고 이미 여러 위원회 활동을 통해 미래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온 만큼, 이번 포럼은 그러한 논의들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도록 보완하고 정부 정책과 연결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포럼 내에서 AI 전환과 그린에너지 전환 등에 관한 민간기업들의 전략과 투자계획을 공유하면서 이에 필요한 정부의 역할을 함께 도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계획들이 실현될 수 있도록 인재 양성이나 신기술 수요 창출 같은 민간 차원의 자체 노력도 함께 논의되는 포럼이 되었으면 합니다.

Q. 뉴 K-인더스트리 포럼은 앞으로 중장기 로드맵과 핵심 정책과제를 제안할 예정입니다. 포럼 공동위원장으로서 반드시 만들어내고 싶은 결과물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경협이 추진하는 이번 포럼은 기업이 주축이 되는 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만큼, 정부나 연구소가 진행하는 산업전략과 달리 실행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차별점입니다. 즉 AX나 GX와 관련해 이미 나와 있는 여러 보고서 위에 또 하나의 산업정책 보고서를 얹는 것이 아니라, 실행력 있는 중장기 산업전환 로드맵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WTO 시대로의 전환에 대비해 90년대 초 마련된 G7 프로젝트와 같은 정부의 장기 R&D 전략이 오늘날 AI·반도체·제조 경쟁력의 기반이 되었듯, 이번 포럼의 논의 결과도 향후 산업경쟁력의 씨앗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장 성과가 보이는 과제에만 집중하기보다, 10년·20년 뒤를 위해 필요한 기술·인재·산업 기반까지 함께 논의되었으면 합니다.
기업의 시각에서 AX·GX·SX와 이를 뒷받침하는 IX를 중심으로 산업의 미래상을 구체화하되, 각 영역에서 기업의 실행과제와 필요한 정책 여건을 함께 정리한다면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논의 과정에서도 정부 관계부처와 적기에 공유하고 사전에 소통해, 실제 정책 수립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포럼에서 제시한 과제들이 실제 기업의 투자와 정부 정책으로 이어지고,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산업경쟁력으로 축적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성과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Q. 포럼 출범식에서 “앞으로 30년, 대한민국은 무엇으로 성장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셨습니다. 30년 뒤 대한민국 산업이 어떤 모습이 되기를 희망하시며, 이 포럼이 어떤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시는지요? 다음 세대 산업 리더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지금 우리는 AI 혁명과 경제안보 부상이라는 변화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30여 년 전 인터넷 경제의 확산, WTO 시대의 개막 이후 가장 근원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로부터 30년이 지나면 또 어떤 새로운 기술과 경제질서를 만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을 사실은, 오늘의 경쟁력이 30년 후 우리의 삶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들려면 현재의 주력업종과 주요기업에 성장을 의존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다양한 산업에서 혁신의 물결을 일으켜 새로운 성장동력을 계속 만들어내는 산업구조를 갖춰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 세대 산업 리더들에게는, 기존의 성공방식을 답습하기보다 스스로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만들어가는 도전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세대 역시 지금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미래 경쟁력을 위한 투자와 도전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물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젊은 기업가들이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고, 그 새로운 아이디어가 앞선 세대가 축적한 경험과 융합되어 미래의 킬러 기술이 끊임없이 창출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