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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바닥의 오피스 도시,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응하는 유연성의 힘
변화의 폭풍 속에서 기민하게 조직을 재편하는 ‘애자일(Agile)’ 경영이 화두로 떠오른 지금, 현대 기업들은 고정된 장벽을 허무는 유연한 시스템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규격화된 경계를 넘어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구글의 ‘베이 뷰 캠퍼스’를 통해, 불확실성의 시대를 돌파할 가변적 조직 설계의 건축적 통찰을 들여다 본다.
글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일터와 일하는 방식의 패러다임 시프트
사무실에서 일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1990년대 이후 산업사회가 지식과 정보를 경제 성장과 사회 운영의 핵심으로 삼는 지식기반사회로 전환되면서, 근로자의 역할도 물리적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에서 지적 가치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지식 근로자(Knowledge Worker)로 이동했다. 과거의 정형화된 조직 구조가 해체되고, 프로젝트 중심으로 기민하게 움직이는 이른바 ‘애자일(Agile) 조직’이 비즈니스의 주류로 부상한 것도 이 같은 변화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일하는 방식이 민첩해진 것과 달리, 그 방식을 담아내는 오피스 공간은 오랫동안 합리적인 상자 건물에 머물러 있었다. 균질한 바닥을 만들고, 넓은 방을 구획한 뒤, 그 안에서 하루 종일 책상을 붙이고 일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수직 동선이나 유틸리티 등이 있는 집중 코어는 평면 깊이 20m, 천장 높이 2,800㎜, 기둥 간격 3,600㎜라는 식으로 정해진 규격에 따라 만들어져 왔다. 높이 쌓아 올린 종래의 타워형 업무 건물은 바닥도 좁고, 영업·기획·경리·총무·본부 등 기능에 따라 용도를 균질한 층으로 분리했다. 이는 개인보다 직제와 그룹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수직적 경영 구조의 반영이기도 했다.
그러나 IT의 발달은 이런 사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는 고도화된 인프라 덕분에 지식 근로자는 더 이상 오피스라는 업무 전용공간에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을 통해 도시 전체를 오피스로 삼아 일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리적 출근의 의미가 옅어지면서, 오피스 안에서의 협업 방식 역시 훨씬 유동적으로 변했다.
이제 지식 근로자에게 오피스란 단순히 출퇴근하는 고정된 장소가 아니다. 개인 작업을 위한 장소도 여전히 필요하지만, 프로젝트에 따라 수시로 다른 구성원과 교류하고 팀을 바꾸어 일할 수 있는 ‘유연한 협업의 플랫폼’이 더 절실해졌다. 이러한 공간 속에서 지식 근로자는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기민하게 행동하며, 대량의 물자와 정보를 전달하고 소비하며 재생산한다. 따라서 기업의 혁신은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어질리티(Agility)를 바탕으로, 사람·물건·자본·정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건축공간의 새로운 공식을 함께 구상하는 문제와 맞닿게 되었다.
결국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공간의 변화를 요구한다. 애자일 시대의 오피스는 더 이상 인원을 수용하는 그릇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과 정보, 팀과 프로젝트가 빠르게 만나고 흩어질 수 있도록 조직의 민첩성을 설계하는 경영 인프라에 가까워지고 있다.
경계를 허무는 공간의 공식:
넓은 바닥이 만드는 유기적 연결성
새로운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지원하는 오피스 공간의 첫 번째 원칙은 아주 넓은 바닥을 얻는 것이다. 같은 용적이더라도 수직으로 쪼개지지 않은 넓은 단일 바닥은 다양한 조직을 유연하게 배치하고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물리적 벽을 허물어 조직 간 장벽을 낮추는 애자일의 기본철학은 바닥의 확장으로 구현될 수 있다.
아주 넓은 바닥에서는 경로의 선택 가능성도 커진다. 지름길과 우회로가 함께 생기고, 그 사이에서 우연한 만남과 다양한 접촉이 일어난다. 조직의 영역에 접한 통로는 긴 접촉면이 되어 서로 다른 활동을 드러내고, 사람과 물건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오피스는 부서 간 경계 없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하나의 작은 ‘도시’와 같다.
여기서 넓은 바닥의 의미는 단순한 면적의 확장이 아니다. 조직 간 접촉면을 넓히고, 우연한 만남과 빠른 협업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이는 ‘연결성의 확장’이다.
이처럼 작은 도시 같은 거대한 바닥을 온전히 활용하기 위해 새로운 오피스 건축은 내부의 고정된 벽을 지우고 기둥 간격을 최대로 넓히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코어를 평면의 중심에 두지 않고 건물의 외주부에 배치해 수직·수평 이동을 자유롭게 만든다.
바닥이 매우 넓다면 그 외주부에는 카페나 회의실, 부엌 등의 비업무 영역을 두고, 업무 영역과의 접촉면을 적극적으로 넓힐 수 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모여 서로 접촉하고 자본과 정보를 전달하며, 새로운 생산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이제 21세기의 경영과 건축은 넓은 바닥 위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활동하는 구조적 유연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인터넷에서 거침없이 정보를 찾고 연결하듯이, 건축과 도시의 바닥도 기능별로 구획하거나 벽으로 나누는 대신 연속하는 새로운 형식을 지향한다.
미래 업무 환경의 전형:
구글 ‘베이 뷰 캠퍼스’가 증명한 테이블과 근린의 의미
구글의 ‘베이 뷰 캠퍼스(Bay View Campus)’는 가까운 미래에 기업들이 도입해야 할 사무소 공간의 전형을 보여준다. 실리콘밸리의 중심 마운틴뷰에 2022년 완공된 이 캠퍼스는 정형화된 공간을 넘어 사용자에게 반응하는 유연한 공간을 지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유연함이 단순히 가변적인 벽을 움직이는 단순 기술적 조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협업과 공동 창조(Co-creation)를 극대화하려는 구글 고유의 애자일한 조직 문화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다.
구글은 건물 형태를 먼저 정하고 내부를 맞추던 기존 오피스 패러다임을 뒤집었다.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경험을 최우선에 두고, 내부에서 시작해 외부를 향해 설계한 것이다. 그 결과 2,000명의 대규모 조직이든 10명 규모의 실무 그룹이든 모두 함께 연결되는, 거대한 지붕 아래의 단일 평면 공간이 완성됐다.
구글은 이 넓고 유연한 바닥을 어떤 업무 형태에도 기민하게 대응하도록 만들었다.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소통하는 ‘팀’이었고,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커뮤니티’였기 때문이다. 조직도의 최소 단위가 부서에서 프로젝트팀으로 이동하면, 공간의 최소 단위 역시 고정된 사무실에서 유연한 ‘테이블’로 바뀐다. 베이 뷰 캠퍼스는 이 변화를 건축적으로 구현한 사례다.
이에 따라 직무나 직책 대신 오직 팀별로 구역을 나누었는데, 구글은 이 팀 공간을 캠퍼스 배치의 핵심 기둥이자 ‘테이블’이라 부른다. 특정 작업 그룹이나 40~80명의 팀원이 사용하는 이 테이블은 프로젝트에 따라 유연하게 재구성되는 팀 공간이다. 도시계획 용어인 ‘근린(Neighbourhood)’으로도 불리는 이 테이블 구역들은 조립식 방과 벽, 바퀴 달린 가구를 통해 언제든 쉽게 변형될 수 있다.
수시로 형태를 바꾸는 이러한 가변적 팀 공간들은 주로 상층부에 집중되어 있다. 상층부의 테이블들은 완만한 경사와 계단으로 연결되며, 조직의 유동성 속에서도 각 팀의 영역과 협업 상태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변화에 대응하는 재배치의 속도
공간의 연결성과 복합적 유연성은 가구를 활용하는 시간 척도에서도 드러난다. 개인이 자신의 책상을 조정하는 2분, 팀원들이 즉각 아이디어를 모으는 2시간, 그리고 집중 스프린트를 진행하는 2일까지, 베이 뷰 캠퍼스는 서로 다른 협업의 리듬에 맞춰 공간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벽 시스템과 인프라를 설계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변화가 발생했을 때 사람과 팀, 정보와 공간을 얼마나 빠르게 다시 배열할 수 있는가이다.
그럼에도 이 넓은 바닥 안에서 팀과 팀 사이를 가로막는 물리적 장애물은 거의 없다. 업무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부서 간 크로스오버(Cross-over)를 유지할 수 있도록 회의실과 개인 사무실 같은 공용 시설을 직선 통로 주변에 배치했다. 소규모 공간에서는 집중해서 일할 수 있게 하고, 동시에 전체 공간 안에서는 구성원들이 쉽게 만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모든 영역을 유연하게 연결한 것이다.
베이 뷰 캠퍼스(Bay View Campus) 설계도
예측 불가능한 시대의 지속가능성:
복지와 에코시스템이 만드는 미래의 일터
미래의 일터는 효율만 극대화하는 기계적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집중과 회복, 소통과 재충전이 함께 순환하는 생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구글은 자연과 연결된 건강과 웰빙을 통해 휴먼 리소스의 생산성을 높이는 생태 친화적인(Biophilic) 디자인에 주목했다. 빽빽한 기둥과 지지벽으로 나뉘어 전망이 부족했던 기존 오피스와 달리, 구글은 혁신적인 캐노피 지붕 구조를 활용해 넓게 탁 트인 작업 공간을 구현했다.
내부 작업 공간은 모든 구성원이 직급에 상관없이 자연광과 외부 조망을 누릴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테이블’은 ‘안뜰(Courtyards)’이라 부르는 대략 25개의 비어 있는 공간을 사이에 두고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안뜰’은 채광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아래층으로 끌어들이고, 개방 계단으로 층을 오가거나 작업 방식을 달리할 때 구성원들이 길을 찾도록 돕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아래층은 소통과 충전을 위한 공용 편의 시설로 채워졌다. 일반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 요소와 편의 시설이 사무 공간과 뒤섞이면 업무 몰입을 방해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업무 영역(위층)과 소셜 영역(아래층)을 과감히 분리했다. 지속가능성이 높은 이 캠퍼스에는 카페, 피트니스 센터, 소셜 허브, 회의실, 건강관리 센터, 명상실, 이벤트 공간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배치되어 조직의 활력을 뒷받침한다.
구글의 부동산 담당 부사장인 데이비드 래드클리프는 베이 뷰 캠퍼스를 설계하면서 20년, 30년, 50년, 그리고 100년 뒤 사무실이 어떤 모습일지 그렸지만, 결론은 “우리도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불확실성에 대한 인정이야말로 경영학의 어질리티(Agility)와 건축물의 ‘넓은 바닥’을 관통하는 핵심 단서다.
비즈니스의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기에, 조직도 공간도 어떤 변화든 즉각 수용할 수 있도록 극단적인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한 새로운 건축의 숨겨진 공식은 ‘넓은 바닥’ 그 자체가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도 조직이 스스로 다시 연결되고 재배치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예측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진화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의 일터, 이것이 21세기의 유연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