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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_ 대한민국 지속가능 경영의 이정표 : K-ESG 얼라이언스 5년의 기록

ESG 2.0 시대,
규제를 넘어 신성장동력으로

김윤 한경협 K-ESG 얼라이언스 의장 / 삼양홀딩스 회장

(현)삼양홀딩스 회장

(현)한일경제협회 명예회장

(현)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명예이사장

(현)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

(현)한국메세나협회 부회장

(전)BIAC(OECD 산하 경제자문기구) 한국위원회 위원장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됨에 따라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유가 급등과 공급망 불안은 단순한 비용 상승의 문제를 넘어, 특정 에너지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기업 경영에 얼마나 치명적인 리스크가 될 수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이제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원을 다변화하는 것은 환경적 가치를 넘어 기업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전략적 과제가 되었다. 한때 트럼프 정부 집권으로 부침을 겪었지만 최근 급변하는 대외 환경 속에서 ESG 경영은 또 한번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글로벌 ESG 정책 지형은 거대한 변화를 겪었다. ‘자율’과 ‘당위’의 영역에 머물렀던 ESG 경영은 이제 ‘의무’의 단계로까지 진입했다. 미국의 트럼프 재집권 이후 에너지 및 환경 정책 기조에 일부 변화가 감지되며 이른바 ‘안티 ESG’ 기류가 형성되기도 했으나,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규제의 큰 물줄기는 흔들림이 없다. 오히려 규제는 더욱 구체화되고 정교해지고 있다. 당장 시행 목전에 있는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탄소 배출에 대한 실질적인 비용 부담을 현실화하고 있으며, 유럽 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은 공급망 내에 포함된 우리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정보 공개와 관리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일원인 한국 기업들에게 ESG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기본값’이 된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발맞춰 우리 정부도 최근 지속가능성공시 로드맵을 구체화했다. 향후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상장사를 시작으로 단계적 도입이 예상됨에 따라 한국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이러한 공시 제도는 우리 기업들이 가보지 않은 길이고, 도전적인 과제임에 틀림없다. 기후 관련 위험과 기회뿐 아니라, 공급망 전체의 배출량을 측정해야 하는 스코프 3 산정 등은 대기업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업이기도 하다. 특히 중견·중소기업까지 이어지는 공급망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검증하는 인프라를 단기간에 구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왕 제도가 시행되는 만큼 이를 단순히 ‘규제 대응’ 차원의 비용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시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기업은 스스로의 자원 사용 효율성을 점검하고, 잠재적인 경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파악하며, 새로운 시장 기회를 발굴하는 ‘성장의 툴’로 삼아야 한다. 투명한 정보 공개는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얻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며, 이는 곧 기업 가치 제고로 이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매우 결정적이다.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은 기업에 대한 압박이 아니라 ‘전폭적인 지원’에 달려 있다.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지원, 표준화된 데이터 관리 인프라 보급,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들이 과도한 법적 부담 없이 자율적으로 제도를 내재화할 수 있도록 유연하고 시장친화적인 정책적 뒷받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민관의 긴밀한 협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경협 K-ESG 얼라이언스 의장으로 활동한 지 어느덧 만 5년이 되었다. 초기 30여 개에 불과했던 얼라이언스 참여 기업이 이제 60여 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을 보면 우리 기업 경영 현장에 ESG의 뿌리가 얼마나 깊게 내려졌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출범 초기 기업들의 ESG진입 장벽을 낮추는 인큐베이터로 출발한 얼라이언스는 지난 5년간 국회, 정부, 자본시장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아우르는 민관 협력 플랫폼으로 진화해 왔다.”



출범 초기 기업들의 ESG 진입 장벽을 낮추는 인큐베이터로 출발한 얼라이언스는 지난 5년간 국회, 정부, 자본시장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아우르는 민관 협력 플랫폼으로 진화해 왔다. 우리는 금융위, 공정위, 고용부 등 관계부처를 초청해 현장의 애로사항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규제 중심의 접근 대신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시장친화적 정책을 유도해 왔다. 특히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우수기업에 대한 과징금 감경 제도 법제화와 글로벌 공급망 실사 부담 완화 기준 정립 등은 현장의 목소리가 제도로 결실을 맺은 대표적 성과다. 나아가 글로벌 공시 의무화 장벽 앞에서는 기업들의 현실적 여유와 가이드라인을 강력히 대변해 왔으며, 최근에는 저출생 극복을 위한 가족친화 경영과 중동발 에너지 안보 위기에 대응한 탈탄소 기술 혁신까지 의제를 확장하며 국가적 과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자율과 책임이라는 가치 아래 대중소 상생 생태계를 구축하며 정책 당국과 서로의 간극을 좁혀온 과정은 우리 경제가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단단한 디딤돌이자 매우 보람된 여정이었다.

이제 우리는 ‘ESG 2.0’이라는 새로운 챕터를 펼치려 한다. ESG 경영의 주어는 ‘기업’인 만큼 우리 기업들이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해나가야 한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길게 보면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기업, 정부, 사회가 함께 노력한다면 ESG의 마지막 장은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완성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