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글로벌 전력 인프라의
미래를 선점하다
구자은 LS그룹 회장

글로벌 전력 인프라의
미래를 선점하다
구자은 LS그룹 회장

프랑수아 자코브 이미지

AI와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인프라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지금, 산업의 무게중심은 빠르게 ‘전기화(Electrification)’로 이동하고 있다. 구리(銅)에서 출발해 송·변·배전을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하며 ‘전기화 시대’를 선도하는 LS그룹의 구자은 회장을 만나, 글로벌 전력망 패권 경쟁 속 에너지 안보의 청사진과 대전환기를 돌파하는 실천적 리더십에 대해 들었다.

정리 김나연

사진 LS그룹

현장경영

Q.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 직접 발로 뛰며 해법을 찾는 ‘실천형 리더십’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대전환기 속에서 회장님께서 어떤 현장을 주로 살피시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미래 성장동력을 직접 챙기기 위해 무엇보다 ‘현장경영’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매년 미국 CES나 독일 하노버 메쎄 등 세계적인 기술 격전지를 직접 찾아 최신 기술 트렌드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그룹의 미래를 위한 인사이트를 찾고 있습니다. 더불어 대통령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을 방문하며 글로벌 비즈니스의 흐름을 확인해 왔습니다. 현재 LS그룹은 아세안과 유럽 등 세계 25개국에 걸쳐 약 100여 군데의 해외 현장에 진출해 있는데, 해외 현장을 직접 방문해 전력 인프라와 에너지 전환, 전력 슈퍼사이클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온도를 점검하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사업으로 강력하게 추진 중인 이차전지 소재, 친환경 구리 소재, 해저케이블 등 그룹의 미래 성장을 견인할 국내외 핵심 사업장을 두루 살피며, 제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인 현장을 점검하고 땀 흘리는 임직원들을 격려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안보 2.0

Q.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산업의 중심에 모두 ‘전력’이 자리 잡으면서 에너지 안보의 개념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안보가 원유와 가스라는 ‘자원 확보’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전력망과 핵심 광물을 포함한 ‘인프라 주권’으로 확장되고 있는데요. 이 거대한 글로벌 산업 질서의 대전환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A. 우리는 지금 인류가 의존해 온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기존의 모든 에너지원이 결국 전기(電氣)로 수렴하는 본격적인 ‘전기화(Electrification) 시대’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반도체와 전자 등이 글로벌 산업 지형을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그 첨단 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반 산업이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글로벌 산업 패러다임 자체가 근본적으로 시프트될 것입니다. 결국 신(新)에너지 안보의 본질은 ‘대용량 고전압의 전기를 어느 국가와 기업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연결·저장·제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 산업계에는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자원은 없지만, 전기를 안정적으로 흘려보내는 인프라 역량과 가치사슬은 기술과 투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LS그룹 역시 전기를 전달하는 핵심 소재인 구리(銅)에서 출발해 송전·변전·배전에 이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해 온 만큼, 우리 산업계가 전기화 시대를 함께 선도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 산업계에는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자원은 없지만, 전기를 안정적으로 흘려보내는 인프라 역량과 가치사슬은 기술과 투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력 슈퍼사이클과 병목의 구조

Q.글로벌 전력망 현장을 어떻게 체감하고 계시며, 우리 산업계에는 어떤 기회와 위험이 공존한다고 보십니까?

A. 현재 글로벌 전력기기 시장은 생성형 AI 인프라 및 데이터센터 확산, 그리고 미국 내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강력하게 맞물리며 본격적인 ‘전력 슈퍼사이클’에 진입했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열기는 상상 이상입니다. 한 예로 초고압 변압기 리드타임이 약 2~3년 이상으로 길어질 만큼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현상이 결코 단기적인 붐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고도의 기술력과 엄격한 품질 인증, 그리고 숙련된 전문 인력 확보가 필수적인 전력 산업의 특성상 진입 장벽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소수의 기업만이 이 수요를 감당할 수 있고, 현재의 병목 현상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우리 기업들에게 기회입니다. 품질과 납기 경쟁력을 갖춘다면 그동안 유럽과 미국 기업이 주도하던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기회의 창은 무한정 열려 있는 건 아니기에, 공급 역량 확보의 속도와 시장 수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성패를 가를 것입니다.

전력망 패권과 전략 거점

Q.최근 북미의 전력망 현대화나 유럽의 해상풍력 인프라 확충 등은 단순한 시장 확대를 넘어 지정학적 ‘전력망 패권 경쟁’의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주목하는 글로벌 전략 거점은 어디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전력 인프라 수요가 가장 집중되는 곳은 단연 북미 시장입니다.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노후 전력망 교체 시기가 맞물린 최대의 핵심 전장이기 때문입니다. 송전에서 변전, 배전에 이르는 전력 인프라 전 영역의 역량을 이 지역에 집중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LS그룹 역시 오는 2030년까지 약 30억 달러(약 4조 5천억 원)를 미국 시장에 투자할 계획인데, 이는 한 기업의 결정을 넘어 전력망이 곧 산업 주권이 되는 시대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는 현재의 가파른 수요처를 넘어, 향후 지정학적 리스크 이후 도래할 유럽과 중동 등지의 ‘전후 복구 및 대규모 재건 사업’ 기회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갈등이 종식된 이후 파괴된 전력 인프라를 다시 세우는 재건 시장이 본격화될 것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준비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은 시장이 열리는 순간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공급망 주권과 소재 자립

Q.구리나 희토류 등 핵심 원자재 공급망이 특정 국가에 편중되면서 전력 인프라 및 첨단 산업의 리스크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 LS그룹은 공급망 리스크를 어떻게 제어하고 계시며, 대한민국 산업계는 어떤 방향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A. 핵심 원자재의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는 이제 개별 기업의 생존을 넘어, K-배터리와 전력 인프라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지키기 위한 국가적 필수 과제입니다. LS그룹은 황산니켈 등 이차전지 핵심 소재와 희토류, 영구자석, 친환경 구리소재 등을 차세대 신사업으로 추진하며 국가 핵심소재의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계열사에서 전구체 공장 착공과 황산니켈 공장 준공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 중이며, 이를 통해 ‘황산니켈-전구체-양극재’로 이어지는 배터리 핵심 가치사슬의 완전한 국산화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산업계가 참고할 수 있는 핵심 소재 국산화 경로를 제시한다는 의미도 큽니다.
공급망 리스크를 돌파하려면 특정국에 대한 과도한 원자재 의존도를 낮추고, 밸류체인 전반의 기술 자립을 이루는 ‘가치사슬의 내재화’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어야 합니다. 최근 전기차 시장의 캐즘1 우려가 있지만, 오히려 글로벌 주요국의 탈중국화 기조와 공급망 재편 흐름은 우리 기업들에게 기회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중국 의존도가 90% 이상에 달하는 희토류 등 핵심 광물 분야에서 우리 산업계가 ‘산화물 확보-금속화-자석 제조’에 이르는 가치사슬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구축해 나간다면, 대외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국가 차원의 공급망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 1.캐즘(Chasm): 첨단 기술이나 신제품이 초기 진입기에서 대중화 단계로 이행하기 직전, 수요가 급격히 정체되거나 일시적으로 후퇴하는 대단절 현상
국가적 정책 과제

Q.주요 경쟁국들이 자국 제조업 육성과 공급망 내재화를 위해 파격적인 재정 및 세제지원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풍랑을 뚫고 생존하기 위해 정부와 사회 차원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정책적 뒷받침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보호무역과 자국 우선주의, 지정학적 갈등이 맞물리며 에너지와 공급망 안보가 기업의 생존 문제로 직결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에너지가 전기화되어 가는 지금,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에너지 안보 확립은 어느 때보다 시급한 국가적 최우선 과제입니다. 현재 우리 정부가 구상 중인 국가 차원의 대규모 ‘에너지 고속도로(송배전망)’ 구축이나, 범유럽 국가들이 공동으로 협력하는 대형 에너지 네트워크(TEN-E) 전략과 같은 국가 간, 혹은 우호 국가들 사이의 강력한 ‘산업 협력 프로젝트’가 다각도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이는 한 기업이 풀 수 있는 과제가 아닙니다. 정부와 기업, 연구기관이 단기적 이익을 떠나 국가 백년대계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응해 나가야 할 공동의 마스터플랜이라고 생각합니다.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4'에서 LS 부스를 방문해 직원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구자은 회장
디지털 전환(DX)

Q.LS그룹은 글로벌 클라우드 체계 구축과 생성형 AI 도입 등 디지털 전환(DX)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전통 제조기업이 디지털 기업으로 전환할 때 가장 먼저 혁신해야 하는 영역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전통적인 제조기업이 성공적으로 디지털 체질 개선을 이루려면 기술 도입 자체보다 ‘임직원들의 일하는 방식과 마인드셋’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올해 초 신년하례 행사에서 매년 관례로 해오던 회장 신년사를 AI 에이전트를 활용한 신년사 형태로 처음 발표했습니다.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정형화된 반복 업무는 AI에게 과감히 맡겨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사람은 보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업무에 집중하자는,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향한 강력한 주문이었습니다.
사무 현장에서는 이를 위해 전사적으로 ‘LS GPT’, ‘LS Biz 인텔리전스’, ‘HR AI 에이전트’ 등 독자적인 생성형 AI 플랫폼을 자체적으로 구축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임직원들이 필요한 AI 기반 업무 도구와 프로토타입을 현장에서 직접 제작해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제조업의 본질인 생산 현장의 혁신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LS전선의 AI 기반 케이블 모니터링 시스템(i-Check) 도입, 세계등대공장으로 선정된 LS일렉트릭 청주 스마트공장의 고도화, 그리고 LSMnM이 추진 중인 스마트팩토리 프로젝트인 ‘ODS(온산 디지털 스멜터)’ 도입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를 통해 제조 효율성 극대화는 물론 산업 현장의 안전 예방 역량까지 동시에 선제적으로 강화하고 있습니다.

Vision 2030과 양손잡이 경영

Q.2026년은 LS그룹이 ‘Vision 2030’의 반환점을 향해 가는 해입니다. 지금까지의 전략이 시장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하십니까?

A. 앞서 말씀드린 노력들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글로벌 전력 슈퍼사이클 업황에 발맞춘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 개선이 이뤄진 결과, 그룹 전체의 매출액은 2025년 45조 7,223억 원, 영업이익 1조 4,884억 원을 달성하며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을 동시에 이뤘습니다. 주요 상장사의 합산 시가 총액은 60조로 2023년 말 대비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전기·전력·소재 등 기존에 강점을 가진 주력 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입지를 공고히 하는 한편, 배터리·전기차·반도체로 대변되는 미래 신사업인 ‘배·전·반’ 산업을 집중 육성한 ‘양손잡이 경영’ 전략이 주효했다는 방증이라 생각합니다. 한쪽 손으로는 잘하는 것을 더 확실하게, 다른 손으로는 새로운 것을 과감하게. 불확실성이 큰 시대일수록 이 균형이 더 중요해진다고 봅니다.

일상과 영감

Q.급변하는 산업 환경을 읽고 큰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인 만큼, 회장님만의 시간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평소 개인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A. 매일 아침 반신욕을 하며 하루의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주말에는 도예, 나무 가꾸기, 양봉, 밭일, 차 마시기처럼 동적인 활동보다는 정적인 취미를 즐기는 편입니다. 손과 마음을 천천히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오히려 창의력이 재충전되고, 경영 현장에서 보이지 않던 인사이트를 얻습니다. 급변하는 시대 한가운데에 의식적으로 고요하게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퓨처리스트에게

Q.회장님께서는 젊은 인재들에게 ‘퓨처리스트(Futurist)’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십니다. 산업 대전환의 시대를 이끌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역량이나 태도는 무엇입니까?

A. AI 시대가 도래하고 미래 산업 생태계가 아무리 급변하더라도, 결국 그 판을 만들고 리딩하는 본질은 ‘사람’, 즉 인재에 있습니다. LS그룹이 지향하는 대표 인재상이 바로 ‘퓨처리스트(Futurist)’입니다. 퓨처리스트는 단순히 책상에 앉아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몰려오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새로운 기회를 과감히 개척해 나가는 ‘실천형 인재’를 뜻합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CNN 창립자인 테드 터너가 남긴 명언인 “Lead, follow or get out of the way”라는 말을 자주 들려줍니다. 어떤 일을 하기로 결단했다면, 직접 리더가 되어 제대로 이끌든지, 아니면 리더가 제시한 방향을 믿고 제대로 따라야 합니다. 대전환기에는 사회나 조직의 구성원 모두가 합심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서로를 이끌고 밀어주는 과감한 실행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Q.끝으로, 산업 대전환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한국 기업과 후배 경영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지금은 탈세계화와 자국 우선주의 등 냉혹한 ‘힘의 논리’로 세계 경제 질서가 재편되는 거대한 대변혁기입니다. 과거 플라자합의나 IMF 외환위기라는 역사가 말해주듯, 사상 초유의 대외적 리스크가 몰려오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향후 기업의 미래 30년 성패를 결정짓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기보다 능동적으로 올라타는 ‘애자일(Agile) 경영’의 체질화가 필요합니다. 저 또한 그룹 회장 취임 이후, 전략과 실행을 우선 추진하고 현장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피벗(Pivot) 역량을 발휘하여 유연하게 방향을 전환하는 조직으로 체질을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후배 경영인들께서도 변화된 국제 정세 속에 숨겨진 새로운 기회 요소를 포착해 내는 대담한 시각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민첩성’과 ‘대담한 실행력’으로 무장한 리더들이 모여 이후의 시대를 선도하는 대한민국 산업계를 함께 만들어 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