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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손님을 향한
가장 정직한 환대
박효남 셰프

최근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2>는 화려한 기술보다 셰프들 간 관계에서 비롯된 서사가 주목받았다. ‘백수저’ 셰프로 출연한 박효남 명장이 자신을 대결 상대로 지목한 후배 셰프에게 “나를 딛고 훨훨 날았으면 좋겠다”고 건넨 한마디는 많은 이들에게 여운을 남겼다.
정점에서 다시 초심의 길을 선택한 거장. 여의도 FKI타워 50층에 새롭게 문을 연 프리미엄 다이닝 ‘ORBIT 50’에서 그를 만났다.

김나연

사진 신규철

최근 <흑백요리사 2> 출연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미 ‘명장’의 반열에 오르신 상태에서 서바이벌에 도전하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제작진에게 ‘백’이 아니라 ‘흑’으로 나가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저 또한 똑같이 어렵고 힘들게 시작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그 시절을 한 번도 고생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요리가 좋아서 즐겼을 뿐입니다.
경연 중 ‘프렌치 파파’라는 친구가 저를 지명했는데, 알고 보니 90년대 제가 출연한 방송을 보고 요리사를 꿈꿨다고 하더군요. 아이가 아픈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대결의 승패보다는 그 친구가 나를 이기고 빛이 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대한민국 요리 명장으로서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요리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인생의 전환점이 있으셨나요?

중학교 1학년 때 아버님을 따라 상경했습니다. 이북에서 홀로 내려와 20여 년간 직업군인으로 복무하셨던 아버님이 오직 자식들 공부를 위해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연탄 가게를 시작하셨죠. 한여름 뙤약볕 아래 아버님 이마에 흐르는 검은 땀방울을 보고 철이 든 것 같아요. ‘빨리 기술을 배워서 저 땀방울을 닦아 드려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래서 고등학교 합격증도 부모님께 숨기고 요리학원으로 향했습니다.
어린 시절 사고로 손가락 마디를 잃었지만, 그것이 장애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남들보다 더 세밀하게 칼을 다루는 연습을 하게 만든 동력이 되었죠. 요리가 재미있어서 시작했고, 무언가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게 행복했습니다. 저에게 주방은 47년 동안 ‘놀이터’ 같은 존재입니다.

“손님에게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주는 어머니의 마음이 주방장의 본분이라 믿기 때문에,
그 원칙과 기강은 흐트러진 적이 없습니다.
이런 엄격함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목표인 ‘최고의 요리’를 위한 약속입니다.”

정통 프랑스 요리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토종 셰프’로서 프랑스 정부의 훈장까지 받으셨습니다. 본토의 인정을 받아낸 핵심 경쟁력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프랑스 요리를 하지만, 제 몸에는 우리 장(醬)의 맛이 배어 있습니다. 예전에 세계적인 거장 폴 보퀴즈(Paul Bocuse) 셰프가 한국에 왔을 때 우리 간장을 사가는 것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식재료는 그야말로 ‘황금 땅’에서 자란 보물입니다.
저는 된장, 고추장 같은 우리 발효 음식을 프랑스 요리에 접목했습니다. 프랑스 정부에서 훈장을 준 것도 본토 음식을 그대로 따라 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훌륭한 식재료와 장류를 활용해 프랑스 요리를 독창적으로 알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력이 강해야 음식도 힘을 얻습니다. 한식 세계화의 핵심에도 우리 고유의 정체성인 ‘발효의 맛’을 서양식 시스템에 어떻게 녹여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흑백요리사 2> 팀전 당시, 강하게 팀원들을 이끌기보다 각자의 역량을 살피며 부드럽게 조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 주방에서의 리더 박효남은 어떤 모습인가요?

거기엔 다들 대단한 실력을 갖춘 ‘머리’들만 모여 있었잖아요(웃음). 그런 현장에서는 제가 누군가를 억지로 끌고 가기보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을 잘 연결해 주는 ‘커넥트(Connect)’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주방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운영하려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고 가계부를 알뜰하게 꾸리시죠. 그래서 저는 주방 쓰레기통까지 뒤져본 적도 있었어요. 사용할 수 있는 식재료 하나가 버려지는 것은 곧 내 돈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네 주머니 속 돈이라면 그렇게 쉽게 버리겠느냐”고 호되게 꾸짖기도 하죠.
손님에게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주는 어머니의 마음이 주방장의 본분이라 믿기 때문에, 그 원칙과 기강은 흐트러진 적이 없습니다. 이런 엄격함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목표인 ‘최고의 요리’를 위한 약속입니다.

50여 년의 요리 인생을 통틀어 셰프님을 가장 잘 표현하는 ‘한 가지 요리’를 꼽으신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생선 요리를 꼽고 싶습니다. 사실 가장 어렵고 흥미로운 분야이죠. 고기 요리는 손님이 원하는 굽기 정도가 명확하지만, 생선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만 덜 익으면 비리고, 조금만 더 익으면 퍽퍽해지죠. 그래서 생선 요리를 할 때는 ‘저스트 쿡(Just Cook)’, 즉 가장 완벽하게 익은 찰나를 잡아내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더 긴장하고 집중합니다.
그중에서도 남프랑스식 해물탕인 ‘부이야베스’는 제 요리 인생의 전환점이 된 요리입니다. 90년대 힐튼 호텔에서 일하던 시절, 한 손님에게 이 요리로 두 번이나 퇴짜를 맞은 적이 있어요. 자존심이 상했지만 직접 찾아가 여쭈었더니 “간이 안 맞는다”고 하시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 입맛에만 맞춘 요리를 하고 있었구나’. 그날 이후 저는 고객 한 명 한 명의 취향을 기록하며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진정한 셰프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여의도 FKI타워 50층에 오픈한 ‘ORBIT 50’의 총괄 셰프로서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어떤 의미 있는 경험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음식은 비즈니스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입니다. 이곳 ORBIT 50을 찾는 분들이 음식의 스토리를 통해 대화를 풀어나가고, 그 고리를 통해 비즈니스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서 대한민국 최상위 0.1% 식재료만 사용할 겁니다. 매일 직접 고른 생선과 전국 각지의 명품 재료로 진심을 대접할 예정입니다. 비즈니스 리더들이 이곳에서 식사하며 힐링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어 가실 수 있도록 어머니의 마음으로 식탁을 준비하겠습니다.

많은 광고 섭외를 거절하시며 “상품이 아닌 명장으로 남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셰프님이 지향하는 ‘진정한 명장’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명장은 자신이 가진 것을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최근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관심이 저 개인의 이익으로 끝나길 원치 않습니다. 광고를 하게 되더라도 수익은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부하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요리로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것, 그것이 제가 남기고 싶은 명장의 모습입니다.

이제 막 꿈을 펼치기 시작한 청년들이나 새로운 도전을 앞둔 청춘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가장 먼저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실력이 정말 뛰어납니다. 그런데 자꾸 남과 비교하며 위축되곤 해요. 하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강점은 반드시 있습니다.
또 하나 당부하고 싶은 건 ‘사서 고생하지 마라’는 겁니다. 어른들은 고생을 해봐야 철이 든다고 하지만, 저는 우리 후배들이 억지로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 과정 자체를 재미있게 즐기다 보면 인내심은 저절로 생깁니다. 무엇이든 억지로 버티는 고생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야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