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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업 하이웨이’ 구축을 말하다
제2차 기업성장포럼

한국경제인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공동 주관한 제2차 기업성장포럼이 열렸다. 제1차 포럼에서 ‘기업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제도적 제약과 규제 누적 문제’를 진단했다면, 이번 제2차 포럼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민간 주도의 성장 엔진을 되살리기 위한 혁신 전략을 구체화하는 자리가 되었다.

김나연

사진 한국경제인협회

“성장하는 기업이 손해 보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다음 30년은 담보하기 어렵다.
성장을 처벌하는 제도에서 성장을 보상하는 제도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성장 멈춘 사다리, 다시 세우기 위한 민관 연대

기업성장포럼은 2025년 9월 출범한 정책 협의체로, 기업 규모별 차등규제와 불균형한 지원 체계가 기업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시작됐다. 이번 제2차 기업성장포럼에는 경제계뿐 아니라 정부·국회·금융권·학계·스타트업까지 폭넓게 참여한 만큼, 성장 정책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이 한 자리에서 논의됐다.
포럼 전반을 관통한 키워드는 ‘성장’과 ‘스케일업’이었다. ‘민간의 성장엔진이 꺼지면 2030년 이후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는 위기의식 아래, 기업 규모별 차등규제와 공정거래제도를 어떻게 손질할 것인지, 딥테크·AI 등 신산업에 필요한 막대한 자본을 생산적 금융과 정책·민간 자본 결합을 통해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성장률 둔화와 잠재성장률 하락, 신생·고성장기업의 감소, 중견기업의 중소기업 회귀 등 ‘3저(저출생·저성장·저활력)’ 구조가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된 가운데, 참석자들은 ‘성장하는 기업이 손해 보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다음 30년은 담보하기 어렵다’는 데 공감대를 모았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구윤철 부총리, 여야 정책위의장 등이 인사말을 통해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규제·제도 환경의 한계를 짚고, 성장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어진 정철 한경협 한국경제연구원장, 한상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 주진열 부산대 교수의 기조강연은 ‘기업의 성장 동력 약화와 스케일업 전략’, ‘스타트업 생태계와 생산적 금융’, ‘공정거래제도의 혁신 경쟁법 전환’이라는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면서도, 공통적으로 ‘성장을 처벌하는 제도에서 성장을 보상하는 제도로의 대전환’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학계·금융·기업 대표들이 자유토론에서 각자의 경험과 제도 개선 요구, 성장 전략을 공유하며 민관이 함께 성장사다리를 복원하기 위한 청사진을 공유했다.
이번 포럼은 문제 진단을 넘어, 제도와 금융·산업 전략을 포함한 ‘성장 생태계 전환’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향후 포럼은 이번 논의를 바탕으로 세부 정책과 협력 모델을 구체화하며, 민관이 함께 추진하는 성장 패러다임 전환의 토대를 마련해나갈 계획이다.

기조강연 1 - 기업 성장엔진 재점화를 위한 청사진

정철 한경협 연구총괄대표 겸 한국경제연구원장

한국 기업 생태계는 최근 ‘3저 위기(기업의 저출생·저성장·저활력)’에 직면해 있다. 신생·고성장기업이 동시에 줄어드는 흐름은 단기 경기 변동이 아니라 생태계 자체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경고 신호다.
성장의 중심축이 되어야 할 중견기업의 자연 증가율이 최근 4년간 0%대에 머무른 점 역시 심각하다. 중소 → 중견 →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 사다리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중견에서 중소로 되돌아간 기업 수가 오히려 더 많아진 역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성장은 생존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성장 과정이 부담으로 전환되는 ‘성장 역설’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경직성은 세 가지 구조적 병목에서 비롯된다.
첫째, 기업 규모에 따라 지원과 혜택이 줄어드는 역(易)인센티브가 고착화되어 있다. 예컨대 R&D 세액공제율은 중소기업 25%, 중견기업 8%, 대기업 2%로 급격히 떨어져 기업이 성장할수록 혁신 유인이 오히려 줄어드는 역진적 구조가 발생한다.
둘째,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사전에 규제를 부과하는 현행 공정거래 체계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괴리가 있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규제 개수와 부담이 누적되며, 343개에 달하는 추가 규제 의무를 감당해야 하는 실정이다.
셋째, AI·바이오 등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미래 산업에서 전략적 자본 공급이 제도적으로 제한되고 있다. 지주회사 및 CVC 규제로 인해 기업이 외부 자금과 해외 투자를 활용하기 어렵고, 산업·금융의 협력을 통한 장기 성장투자 체계 구축 또한 쉽지 않다.
세계가 기다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유니콘 경쟁력도 약화되고 있다. 한국의 유니콘 기업 수는 글로벌 9위(18개, 세계 비중 1%)에 불과하며 5년 전보다 순위가 하락했다. 성장 엔진의 골든타임이 소진되고 있다는 경고다.
이러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성장 과정 전체를 하나의 연속적인 경로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스케일업 하이웨이(Scale-up Highway)라는 개념은 바로 그 관점에서 출발한다. 기업이 성장 단계마다 새로운 제약을 넘어서야 하는 구조가 아니라, 성장에 따른 보상이 축적되고 혁신이 다시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성장 인센티브 확충, 스마트 규제개혁, 생산적 금융 활성화가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기조강연 2 - 벤처·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 방안

한상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지난 10여 년간 디지털 전환(DX)의 핵심 주체로 자리 잡았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회원사만 해도 2,600여 개, 이 중 1,500여 개가 기관 투자를 유치, 14개 유니콘 기업은 총 약 85~90조 원 규모의 기업가치를 형성하며 국내 주요 산업과 소비 시장의 디지털 전환을 견인해 왔다.
이러한 성장은 단순한 트렌드 변화가 아니다. OTT 확산으로 복합상영관의 집객 패턴이 변화하고, 이커머스 기반 패션 플랫폼이 오프라인 상권을 재편하며, 모빌리티 혁신으로 버스터미널까지 문을 닫는 시장 전환이 나타났다. 한국 산업의 중심축이 플랫폼·데이터 기반 산업구조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특히 글로벌 AI 경쟁에서 한국은 미국·중국에 이어 유일하게 Top 20 제품에 이름을 올린 국가로 꼽힌다. 이는 ‘AI 전환 시대의 가장 강력한 혁신 동력은 스타트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다만, 혁신의 속도를 지탱할 생산적 금융 기반은 여전히 부족하다. 한국의 M&A 비중은 5% 수준에 그치며, 미국 90% 이상과 대비하면 회수·성장 경로가 협소하다. CVC 및 지주회사 규제도 여전히 대기업 자본의 전략적 투자 흐름을 제약해 첨단 제조·AI·바이오 등 대규모 투자가 요구되는 분야에서 생태계 확장을 가로막는다. 이 문제는 기업 간 협력의 촉진을 통해 풀어야 한다.
스타트업은 속도와 실험을, 대기업은 인프라와 자원을 제공하며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을 통해 새로운 성장축을 형성하는 동반자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갈등중재 가이드라인과 협력 안전망을 갖춘 제도적 지원 체계가 병행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우수 인재의 유연한 이동을 촉진하기 위해 임금격차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때 고속 성장 단계 기업의 조직 성숙도와 경쟁력이 한층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기조강연 3 - 공정거래제도의 합리적 개선을 통한 기업 성장환경 조성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 공정거래 제도는 오랜 기간 대기업 집단 억제 모델을 근간으로 설계되어 왔다. 경제력 집중을 막고 정경유착 우려를 최소화한다는 취지였지만, 시장은 이미 플랫폼 기반의 글로벌 경쟁 체제로 이동했고 장기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한 환경으로 변화했다. 그럼에도 규제 프레임은 1990년대 이전의 산업 구조에 머물러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규율 체계다.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은 대기업집단을 사전에 규제하지 않으며, 금융·산업 자본의 결합도 폭넓게 허용한다. 반면 한국은 기업집단이 5조 원을 넘는 순간 내부거래·지배구조·계열사 지원까지 포괄적 사전 규제가 일괄 적용된다. 이는 기업 규모 자체를 위험 요인으로 간주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전략적·미래지향적 사업 지원이 위축되기 쉽다. 특히 AI·양자컴퓨팅·바이오 산업처럼 수십~수백조 원의 장기 투자와 기술 축적이 전제되는 분야에서는 내부 자본 이동이 제도적으로 제한되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대기업이 보유한 자본과 인프라가 혁신 영역으로 충분히 흘러가지 못하면 한국 산업의 기술격차는 구조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미국 구글과 중국 알리바바와 같은 기업이 막대한 투자 여력으로 초거대 AI와 양자 기술 경쟁을 주도하는 동안 한국 기업은 형사처벌 리스크 때문에 같은 전략을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심지어 테슬라의 재생에너지 진출 과정에서 이루어진 계열 인수 사례가 한국에서는 부당지원·특수관계인 이익제공으로 판단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기업은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혁신적 시도를 회피하게 되고, 이것은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공정거래법 개편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 시대 정합성을 되찾는 작업이다. 대기업집단 억제 조항을 전면 재검토하고 경제력 집중 방지와 혁신 촉진이 균형을 이룬 구조로 재설계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규모의 기업이 기술과 자본을 기반으로 성장 경로를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는 제도적 사다리가 복원될 수 있을 것이다.

자유토론 - 성장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제자리걸음만 반복된다

자유토론 세션에서는 경제계와 금융권, 산업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케일업 하이웨이’ 구축 방안과 성장사다리 복원의 조건을 두고 심도 깊은 논의를 이어갔다. 참석자들은 규제의 패러다임 전환, 생산적 금융 확충, 국가 단위 산업 경쟁 전략을 공통과제로 제시하며, “이제는 실행방식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글로벌 산업 질서가 국가 중심 경쟁구조로 이동한 만큼, 딥테크·AI·신제조 분야에서 전략적 자본이 민첩하게 투입될 수 있는 제도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