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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
마케팅의 귀재
“모두가 훌륭한 연주를 할 수는 있지만, 그만큼 시장을 지배할 사람은 없다.” 현란한 기교와 신화적 스토리로 음악사에 전례 없는 인물로 남은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의 본질을 정확하게 나타낸 말이다. 그는 19세기 초 혜성처럼 나타나 무대에 설 때마다 청중을 압도하는 뛰어난 연주와 자신만의 전략으로 클래식 음악 시장을 뒤흔들었다.
글 김준희 피아니스트 겸 고려대학교 학부대학 외래교수
파격적 자기 브랜딩
전통적인 연주자들과 달리 파가니니는 무대 위에서 기괴할 만큼 마른 체구와 검은 머리, 음침한 의상, 그리고 독특한 퍼포먼스로 관객을 압도했다. 그는 또한 스스로 언론의 주목을 받을 만한 화제를 제공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이 퍼지자 파가니니는 이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악마와의 거래’ 또는 ‘악마의 기운을 빌린 듯한 연주’와 같은 자극적인 가십은 그의 브랜드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당대의 유명 연주가 루돌프 크로이처가 어린 파가니니를 보고 “악마의 환영을 보는 듯하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하지만 이 또한 파가니니가 자신을 마케팅하기 위해 과장해 퍼뜨렸을 가능성이 더 높다. 결국 그는 오늘날의 셀럽 마케팅, 스토리텔링, 바이럴 마케팅, 개인 브랜드 전략 등을 두 세기나 앞서 실현한 셈이다.
희소성과 차별화의 활용
파가니니는 매니저를 두고 공연 횟수와 장소를 철저하게 관리했다. 선별된 도시와 극장, 고가의 입장료, 적절한 횟수의 공연 등 모두 희소성의 황금률을 따랐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악, 한정판 상품 같은 그의 무대가 소유욕과 경험욕을 자극했다. 그가 한번 나타나 연주하면 도시 전체가 들썩였고, 티켓은 순식간에 불티나게 팔렸다. 높은 가격의 공연은 그의 가치를 오히려 강화했고, 청중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하나의 명예처럼 생각했다. 마치 제품의 한정판 마케팅, 고급 브랜드의 프리미엄 전략과도 같았다.
그가 희소성을 무기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차별화된 자신만의 탄탄한 기교와 음악적 혁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의 <24개의 무반주 카프리스>는 바이올린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량을 총망라한 작품집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수록된 눈부신 속도의 꾸밈음, 동시다발적인 화음 연주, 활로 현을 튕기는 주법, 하모닉스(Harmonics)1를 활용한 신비로운 휘파람 소리 등은 이전에 누구도 선보인 적 없는 혁신적인 기교들이었다.
- 1.악기에서 발생하는 배음을 강조해 일반적인 음보다 투명하고 가느다란 소리를 내는 특별한 주법.

신비주의와 독점 전략
파가니니는 자신만이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을 쓰고, 일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협연 무대의 리허설에서는 카덴차(cadenza)2를 항상 건너뛰었다. 이는 본인 연주의 하이라이트는 공연장에서 직접 보고 들으라는 뜻이었다. 동시에 리허설 도중 단원들이 그의 연주 기법이나 내용을 외부에 유출하는 것을 단속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또한 파가니니는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결코 연습하지 않았고, 오직 공연장에서만 연주했으며 살롱이나 카페에서 개인적인 사교 활동도 하지 않았다. 제자를 양성하지도 않았던 그는 스스로를 철저하게 신비주의로 포장했다. 심지어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성 가수의 청혼에도 “결혼? 내 음악을 공짜로 들으려고?”라며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태도는 위치 기반 서비스나 플랫폼 비즈니스에서의 초기 독점 전략, 그리고 기술 유출을 막는 오늘날의 특허 경영과 매우 유사하다.
- 2.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 반주가 멈추고 독주자가 기량을 발휘하는 즉흥적 또는 작곡된 독주 구간.
음악가 이상의 혁신가 파가니니
파가니니는 뛰어난 연주가로서 쇼 비즈니스의 기본 공식을 음악의 세계로 끌어들여 무대 위에 새로운 빛을 드리운 인물이다. 그는 예술성과 상업성, 사회성과 시대성을 아우르는 음악가 이상의 혁신가로 ‘미래 경영’을 실천했다. 세상을 떠난 지 18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파가니니는 각자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강렬한 영감의 원천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