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2025 KOREA
불확실성의 파도를 넘은
협력과 연대의 길
PECC 2025
오는 10월 31일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문가 300여 명이 모였다. 한국경제인협회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년 만에 한국이 APEC 의장국을 맡게 된 것을 지원하기 위해 8월 12일 ‘제32차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PECC) 총회’를 공동 개최했다.
사진 김동열, 신규철
2025년 8월 12일 | FKI타워 컨퍼런스센터 그랜드볼룸








PECC(Pacific Economic Cooperation Council)은 정부, 기업, 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제경제협력체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한 정책적 해법을 제시하는 APEC의 싱크탱크이자 공식 옵서버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글로벌 무역 질서를 형성하는 세 가지 흐름
오늘날 글로벌 무역 질서를 새롭게 형성하는 세 가지 주요 흐름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 현안이 안보화되고 있다. 반도체, AI, 배터리, 핵심 광물 등이 교역 품목에서 국가 전략 자산으로 변모하며 각국의 수출 통제, 투자 심사, 공급망 재편은 더욱 치열해졌다. 둘째, 상호 의존의 무기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한때 안정 요인으로 여겨지던 경제적 상호 의존이 동맹국 간에도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어나며 공급망 다변화와 회복력 강화가 중요해졌다. 셋째, 무역이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다. AI, 데이터, 알고리즘, 디지털 표준 등이 새로운 무역 자산으로 부상하며 글로벌 무역의 구조를 재정의한다. 이러한 변화에서 디지털 무역 규범 제정이 시급해지고 있다.
한미 관세 협상의 의미
한국의 무역 의존도는 GDP의 90%를 초과하며, 전체 수출의 약 40%는 미국과 중국에 집중된다. 특히 제조업 비중은 GDP의 27%로, OECD 평균인 16%를 상회한다. 이와 같은 구조적 특성은 한국 경제를 공급망 차질과 경제 안보에 취약하게 만들었고, 한미 관세 협상은 한국 새 정부에 국가적 우선 과제였다.
다행스럽게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며 상호관세는 25%에서 15%로 인하됐다. 여기에는 자동차 등 주요 수출 품목이 포함된다. 한국은 반도체와 제약·바이오 등에서 최혜국 대우를 확보했으며,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패키지를 미국에 약속했다. 이와 더불어 2025년부터 향후 4년간 미국에서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제품을 구매하기로 합의하며 양국의 에너지 안보 협력을 한층 강화했다. 즉 이번 협상은 한미 경제 협력 확대의 토대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양국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한국의 미래 전략
한미 협상이 마무리된 지금, 우리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 경제·무역 파트너를 다변화해야 한다. 미·중 경쟁 심화로 소수 국가에 대한 의존이 지속 불가능해짐에 따라 한국은 신남방 정책 2.0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확장해 나갈 것이다. 둘째, 무역 정책과 산업 정책 간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통합 정책 프레임워크를 구축해 무역 협상, 해외 직접투자, 공급망 회복력, 기술 협력을 결합해야 한다. 셋째, 새로운 무역 규범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WTO 중심의 다자무역 체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WTO 개발투자원활화협정(IFDA) 등 협력 이니셔티브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 학계에 고루 뿌리를 둔 APEC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인큐베이터로서 오랫동안 기능해 왔다. APEC은 앞으로도 디지털과 기후변화 등 다양한 차세대 무역 규범 논의를 주도할 것이며, 한국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할 것이다.
로빈 하딩(Robin Harding) 파이낸셜타임즈 아시아 담당 편집장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현재 세계 무역 시스템의 기초가 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에 제시된 자유무역의 가치, 즉 ‘생활 수준 향상’과 ‘호혜적이고 상호 이익이 되는 협정’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대미 수출은 급감했으나 지역 다변화와 우회 수출을 통해 무역 전환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다행히 세계 경제 전반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나 이는 관세 효과가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관세 효과가 본격화되는 시점부터 공급망 재편과 생산성 저하가 구조적 문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내수 지향적인 미국 경제 특성상 인플레이션 충격은 적을 수도 있지만 무역량 감소와 생산성 저하, 공급망 붕괴, 지속되는 적자 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반대로 중국은 고저축·저소비 구조와 디플레이션 위험에 갇혀 있다. 결국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 경제 사이의 불균형이 세계 경제 전반에 장기적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자유무역의 회복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각국이 가치 사슬 자립을 강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무역 협정을 체결하며 제도적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1930년대 무역 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무역 체제를 회복했듯이 이번에도 국제적 협력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이룩할 것이다.
아투사 카시르자데(Atoosa Kasirzadeh) 미국 카네기멜론대학 교수

1945년 인공지능 연구가 시작될 무렵 AI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 AI는 글로벌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안전하고 공정한 AI의 미래를 위해 지역 협력은 필수적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프라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첫째, 책임 있는 혁신과 기술적 위험의 최소화가 필요하다. 어떤 기술이든 안정성을 전제로 하듯이 AI 혁신도 위험 최소화가 중요하다. 글로벌 안정은 단순히 하나의 알고리즘 개발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AI로 인한 해악을 줄여 나갈 때 이룰 수 있다. 둘째, 지역적 회복력을 확보해야 한다. 물론 디지털, 문화, 사회 등에 대한 회복력도 함께 갖춰 범용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다양한 충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글로벌 안정을 위해 포용적으로 권력을 분배해야 한다. AI 혜택의 분배가 불평등해지지 않도록 협력을 통해 다양한 권력 거점을 형성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혁신을 최대화하면서 위험을 최소화하는 균형 전략을 바탕으로 지역별 협력을 통해 글로벌 안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차이팡(蔡昉) 중국사회과학원 전임 부원장
중국의 인구학적 변화는 세계 경제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례다. 중국은 1980년부터 약 30년간 이어진 인구배당기에 농촌 인구의 대규모 도시 이동을 기반으로 두 자릿수 경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성장률은 점차 둔화되는 추세로, 이는 경제 공급과 수요 양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중국의 현재 근로 세대는 연금 납부, 부모 세대 부양, 노후 대비 저축 등의 부담으로 인해 소비 성향이 약하다. 또한 고전적 의미의 ‘제2차 인구 배당’ 역시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중국에서는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중국은 인적 자본, 특히 교육과 기술 역량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경제 성장과 인구 배당은 절대적인 선악이 아니라 조건부다. 어떤 정책을 선택할지에 따라 불리해 보이는 인구구조도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유리한 요인으로 전환할 수 있다.

나롱차이 아크라사니(Narongchai Akrasanee) 태국 PECC 회장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경제적 수단을 사용하는 ‘경제 정치’(Economic Politics)의 시대에 들어선 요즘, APEC은 기존 FTA 규범을 최적화하며 인력 이동과 디지털 전환 등 새로운 과제를 다뤄야 한다.

미아 미키치(Mia Mikic) 뉴질랜드 와이카토대학 연구위원
APEC은 개방성, 투명성, 확실성, 예측 가능성 등의 핵심 가치를 증진하고 경제 주체 간, 정부 간, 세대간의 신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레나토 레예스 타클레(Renato Reyes Tagle) 페루 PECC 회장
지금과 같은 도전적인 시기에는 ‘대면 네트워크’(face-to-face tool)가 필요하며, 이것이 바로 APEC의 강점이다. APEC은 여전히 합의와 협력의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
APEC의 현재 활동을 재점검하고 변화한 환경에 맞춰야 한다. 일방주의와 경제적 강압에 대한 연구와 대응을 확대하고, 이상적 다자주의와 고품질 자유무역을 지향하되 현실적인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캐카몰 피탁둠롱킷(Kaewkamol Pitakdumrongkit) PECC 임시 국제사무국장
PECC은 정부, 기업, 학계를 잇는 삼자 네트워크와 독립적 성격을 기반으로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왔다. PECC은 앞으로도 디지털, AI, 기후변화, 회복력 등의 주제를 APEC과 연결해 실행 가능한 해법을 제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