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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년의 불꽃,
한 그릇의 진심
여경래 홍보각 오너 셰프

생계를 위해 주방에 들어선 열다섯 소년은 어느덧 세계가 인정하는 대가의 자리에 올라섰다. 50년간 수백만 그릇을 요리했지만 무엇 하나 소홀한 적이 없다. 바로 ‘중식 대가’ 여경래 셰프의 이야기다. 지난 4월 여경래 셰프는 한경협 봉사단과 함께 영남 산불 피해 지역에서 중식 나눔 행사를 진행하며 한 끼의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50년간 진심을 담아 요리해 온 여경래 홍보각 오너 셰프를 만났다.
글 김혜원
사진 신규철
50년째 ‘중식’이라는 한길만을 걷고 계십니다. 과연 ‘중식의 대가’이신데요.
사실 대단한 포부를 지니고 중식에 입문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다 할 포부가 없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 같은데요. 당시만 해도 화교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적었고, 어머니께서 기술을 배우라고 권하셔서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였죠. 그때가 열다섯 살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일을 배우려니 힘들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버텼습니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5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더군요. 언제부터인가 ‘요리가 내 천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반세기 동안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이게 바로 천직이 아닌가 싶어서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수많은 변화를 몸소 겪으셨을 텐데요.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당시와 현재를 비교할 때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느껴요. 예전에는 화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어요. 요리사라는 직종에 대해서도 그랬죠. 지금으로서는 뭐 상상하기 어려운데, ‘중국집에서 일합니다’ 하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요새는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되게 좋아졌죠. TV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활약하는 셰프들도 많고, 유학파 출신 요리사도 심심치 않게 보이더라고요. 제가 일하는 동안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좋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요리가 내 천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반세기 동안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이게 바로 천직이 아닌가 싶어서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국내 최대 규모의 요리 경연인 ‘이금기 요리대회’를 비롯해 세계 각지의 국제 요리 경연에서 20여 년간 심사위원으로 활동해 오셨는데요. 심사위원으로서 후배 요리사들을 향해 애정 어린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중식을 대표하는 ‘이금기’라는 소스가 있어요. 요리에 관심 있는 분들은 아실 만한 브랜드인데요. 제가 2005년부터 이금기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상임고문으로 홍콩에 방문했다가 청년 요리사들을 대상으로 한 중식 요리 경연을 봤어요. 그 순간 부러움이 몰려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대회를 열어서 한국 중식을 발전시키고 싶다’ 하는 생각이 뒤따랐습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하며 후진 양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무렵이었거든요.
귀국 이후 오랫동안 각종 국제 요리 경연에서 심사한 경험을 토대로 2007년 제1회 ‘이금기 대학생 중국요리 경연대회’를 열었습니다. 1회에는 장안대학, 오산대학, 수원여자대학, 혜전대학 등 4개 대학이 참여했는데 작년에 진행된 제18회 이금기 요리대회에는 무려 전국 39개 대학에서 요리사 888명이 참가해 불꽃 튀는 대결을 벌였어요. 앞으로도 대회가 이어져 신진 요리사가 많이 배출되고 한국식 중국요리가 발전하면 좋겠습니다.
작년에는 심사위원이 아닌 참가자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리즈에 등장해 많은 분께 놀라움을 안기셨잖아요. 뒤이어 ‘철가방 요리사’ 임태훈 셰프와의 대결 과정에서 대가의 품격을 보이시며 감동까지 주셨고요.
‘대가의 품격’이라고 표현하시니 쑥스럽네요. 아직까지도 <흑백요리사> 잘 봤다며 반갑게 인사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촬영 당시에는 탈락했으니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후배와의 대결에서 졌다는 창피함이나 부끄러움보다는 ‘드디어 집에 간다!’ 하는 기쁨이 컸죠. 새벽까지 승부가 이어졌는데, 해가 뜨면 출근해야 하니 체력에 한계를 느꼈거든요. 촬영이 끝난 이후에는 까맣게 잊고 지냈어요. 그런데 웬걸, 방송이 공개되고 나니 의외로 반응이 좋더군요.
제가 대결 상대로 지목했을 때, 그리고 저를 이겼을 때 임태훈 셰프가 제게 큰절을 하는 장면이 특히 감동적이었다고 말씀들을 해 주시는데요. 저도 일순간 당황했지만, 한편으로 ‘대한민국은 역시 동방예의지국이구나’ 하는 생각에 임 셰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바삐 사느라 잊고 지내던 무언가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어요.
언젠가 셰프님이 하신 말씀처럼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실력과 태도임을 증명하셨네요.
제가 살아보니 사람들은 결과를 오랫동안 기억하지 않더라고요. 결과에 아등바등 연연하지 말고 매 순간 진심으로 임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일선에서 물러나 오너 셰프로서 홍보각을 지휘하고 계시는데요. 셰프님께서 생각하시는 팀워크와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올해로 예순여섯입니다. 그동안 방송이나 강연을 통해 요리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 드렸지만 현장에서 손을 뗀 지는 10년 정도 됐어요. 직접 요리하지는 않더라도 제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제 식당인 만큼 일정한 맛을 내도록 주방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하나 자랑할 만한 것은 홍보각 주방에서 일하는 후배들이에요. 짧게는 5년, 길게는 16년 정도 손발을 맞췄죠. 리더십이라고 하기엔 거창한 것 같은데요.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한 것이 전부입니다. 칭찬과 격려도 아끼지 않아요. 물론 능력이 좋지 않은 후배에게 좋은 말을 건네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보통 도를 닦지 않고는 불가능하겠지요. 그래도 괜히 잔소리하고 윽박지르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효과적이고 좋더라고요. 개개인의 성향과 개성을 이해하고 같은 직업인으로, 또 사람으로서 존중하면 서로를 믿고 오래 일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기부나 나눔 행사에 꾸준히 참여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쳐 오셨습니다. 지난 4월에는 한경협, ㈜영원무역과 함께 산불 피해 지역 복구 지원 봉사단으로서 경북 안동시 일대에서 따뜻한 중식 나눔을 진행하셨죠?
힘들었던 유년 시절에 받은 도움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생각으로 평소에도 나눔 활동을 해 오고 있었는데요. 때마침 <흑백요리사> 작가님께 한경협 봉사단 소식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워낙 상황이 심각했기에 주저할 것도 없었죠. 현장에 직접 방문하니 더욱 심란해지더라고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중식 나눔 행사에 참여했어요.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는 터라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기꺼이 참여하고 싶습니다.
한국중국요리협회 회장과 세계중국요리연합회 부회장직을 맡고 계시기도 한데요. ‘한국식 중국요리’와 ‘한식의 세계화’의 발전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결국 핵심은 ‘현지화’입니다. 실제로 미팅을 할 때마다 등장하는 주제예요. 전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하나만 고집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한국도 지역마다 김치 맛이 다르잖아요. 중부식 김치도 있고, 남도식 김치도 있고요. 중국은 땅이 넓은 데다 민족도 다양해 ‘중국요리’를 하나로 정의하기는 어려워요. 지역마다 요리 특성이 다르니 북경요리, 상해요리, 광동요리, 사천요리 등으로 부르는 것이죠. 한국식 중국요리는 중국 각 지역의 요리에 기원을 두고 독자적으로 발전한 중식입니다.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해서, 즉 현지화에 성공한 요리인 셈이에요. 그래서 저는 한국형 중식에도, 한식의 세계화에도 긍정적인 입장입니다. 어떤 고정 관념에 갇히면 ‘이게 무슨 한식이야’ ‘이건 중국요리가 아니야’ 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열린 마음으로 현지 재료나 스타일을 적절하게 섞어 봐야 합니다. 융통성과 창의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셰프님의 중식 인생을 대표하는 요리는 무엇인가요?
단연 짜장면이지요. 팔보채나 탕수육, 그보다 더한 고급 요리도 있지만 짜장면이 먼저 떠올라요. 한국형 중식을 대표하는 음식 아니겠습니까. 입학식과 졸업식, 이삿날, 심지어는 생일에도 짜장면을 먹곤 했잖아요. 중식 요리사로서도 짜장면은 매력적인 음식입니다. 제가 50년간 짜장면을 얼마나 많이 만들고, 또 먹었겠어요. 그래도 질리지 않더라고요. 우리 모두의 희로애락이 담긴 한 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향후 계획이나 소망에 대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뭣도 모르고 앞만 바라보던 시절을 지났으니, 이제는 여유롭게 주변을 살피며 완성도를 높여 가려고 해요. 힘 닿는 데까지 주방에서 일하다가 명예롭게 떠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