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주요국 전문가가 진단하는
한국의 글로벌 경제 파트너십

6월 4일 대한민국 새 정부가 출범하며 글로벌 경제 협력 전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EU, 일본 등 세계 주요국 전문가가 제안하는 외교 전략과 파트너십 방향을 통해 한국의 경제 협력 해법을 모색한다.

전략적 정교화를 통해 한미 파트너십을 격상해야

앤서니 김(Anthony Kim)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한미 동맹의 의미

동맹국 간 실질적인 협력을 강화하려면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시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명확성이 필요하다. 지경학적 전환점을 맞이한 지금, 이는 한미 간에 직면한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지정학적 외교 정책 관점에서 넓게 본다면 1953년 상호방위조약을 기반으로 하는 한미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리 잡은 가장 견고하고 성공적인 사례다. 한때 미국의 개발 원조를 받던 한국은 현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경제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나아가 안보를 필요로 하던 나라에서 외부에 안보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국가로 변모했다.
한미 동맹의 특수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미국의 주요 동맹국으로 꼽히는 일본과 독일은 과거에 미국의 적국이었으며, 건국 초기 미국과 영국은 서로 총을 겨눈 역사가 있다. 과거의 적국이 현재의 우방국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미국과 한국은 적국 관계에 놓였던 적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과 이후 중국·러시아의 공산주의 팽창에 함께 맞서 싸우며 형성된 상호 신뢰와 민주주의, 인권, 경제적 자유라는 공통의 가치를 바탕으로 지속적·활력적인 오랜 동맹 관계로 발전해 온 양국은 오늘날 서로를 지지하고 방어하며 의존하고 있다.
한미 동맹은 지금도 충실히 이행되고 있다. 하지만 동맹의 기능을 더욱 넓게, 실용적이고 혁신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 수주 혹은 수개월간 한미 관계를 보다 실용적인 관계로 전환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즉 한미 간 안보·경제 동맹은 물론 보다 광범위한 협력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 특히 전략적 명확성을 강화하고 한미 동맹의 굳건함과 실용성을 제고하는 협력적 상업 외교 이니셔티브를 확대해 한미 동맹의 심화와 발전을 도모한다면 거듭 진화하는 핵심 전략 영역에서 지속 가능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 속 한미 경제안보 파트너십

경제안보가 트럼프 시대를 규정하는 이슈로 부상함에 따라 정부 부처, 시업, 시민 사회 전반에서 총체적인 노력과 일치된 협력적 대응이 필요하다. 다만 각국 정책 결정자들이 유의할 점은 트럼프 대통령을 대할 때, 일정 수준의 돌발 변수를 염두에 두되 과도한 반응은 금물이라는 점이다. 특히 한국은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실익을 얻어 내고 미국과의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보다 유연하게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은 중대한 지경학적 기로에서 미국이 필요로 하는 핵심 자산과 기술 역량을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강조하는 ‘상호주의’ 원칙이 한국에 전략적이며 실용적으로 적용되는 결과를 낳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아가 한미 동맹이 다기능적 협력체로 진화해 가는 과정에서 트럼프의 상호주의 원칙을 방위 분담을 포함한 광범위한 틀 안에서 건설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견인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한국은 한미 양국의 안보 영역을 넘어서 광범위한 맥락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이다. 한미 동맹 관계를 말뿐만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준 대표적인 파트너 국가로도 손꼽을 수 있다. 이처럼 각별한 동맹 관계는 태평양 전역에서 함께 상호 이익을 지키고 공동의 도전 과제를 극복한 숱한 역사의 기록 위에 굳건히 세워져 있으며, 변화무쌍한 글로벌 경제안보 환경에도 적응해 오고 있다.
이러한 배경 아래 한미 양국은 활발한 무역과 투자 등 긴밀한 교류를 하며 경제를 함께 성장시켜 왔다. 그러나 앞으로 양국 관계는 글로벌 경제 질서의 변화, 공급망 재편, 기술 발전, 미 행정부의 정책 기조와 관련된 통상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요즘 같은 전환의 시기에 양국의 실용적 경제 파트너십을 어떻게 조정·재정비할지, 나아가 공공·민간 부문 전반에서 협력의 폭을 확대해 나갈지는 중대한 과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전략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본질적으로 한국은 재집권하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를 단순한 ‘수출입의 교역 관계’(exporter-importer)가 아닌 ‘투자와 개발의 동반자 관계’(joint investor and co-developer)로 격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양국이 전략적 방위 산업을 공동으로 개발하며 생산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협력 의지가 있는 한미 양국의 경제안보 파트너십을 강화할 것이다.

변함없는 한미 파트너십을 향해

여러 방해 요인과 잡음 속에서도 한국과 미국은 경제·전략적으로 필수 불가결한 동반자 관계를 공고히 유지해 왔으며 더욱 실용적인 협력의 전술적 기회를 포착하는 시점에 다다랐다. 지난 70여 년간 한미 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과 그 너머에서 평화와 경제 번영, 안보 증진 측면에서 필수적 역할을 수행했다. 일부 회의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 관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제도화됐으며 양국이 공유하는 가치, 인적 교류, 첨단산업 협력을 통해 한층 더 견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이 곧 한국과 미국이 글로벌 차원의 공동 행동에 나서기에 가장 적절한 시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방한 당시 국빈 만찬에서 “한미 양국은 진정한 파트너로서 도전과 기회의 시기를 헤쳐 나가며 변함없는 우정을 지켜 왔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기회가 놓여 있습니다. 앞으로도 양국은 서로에 대한 굳건한 지지를 계속 이어 갈 것입니다.”라며 양국 관계를 명확히 재확인했다. 실제로 한국과 미국은 부침을 함께 겪는 과정에서도 변함없는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제는 한미 양국 정부가 서로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 검증된 동맹을 더욱 발전시킬 시점이다. 즉 한미 동맹의 지평을 더욱 넓고 높게 확장해야 할 때다. 지정학적 환경이 거듭 빠르게 진화하는 이 중대한 전환기에 주요 정책 영역에서 한미 양국이 전략적 명확성과 정교함을 확보해 나간다면 자유와 안보, 번영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 파트너십을 보다 의미 있는 방식으로 확대·심화할 수 있을 것이다.

긴장 고조 속에서 더욱 기대되는 한-EU 협력

프랑수아즈 니콜라(Françoise Nicolas)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 아시아연구소 수석고문

대한민국과 유럽연합(EU)은 오랜 기간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 몇 년 전 어느 한국 대사가 언급했듯이 한국과 EU는 ‘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라는 공통된 가치와 원칙, 그리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대한 공동의 의지를 바탕으로 탄생한 최적의 협력 파트너’이다.

한-EU 협력의 심화

양측은 1963년 한-EU 기본협정을 체결하며 공식적인 관계를 시작했다. 이후 협정 개정, 2010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의 격상 등으로 협력은 꾸준히 확대됐다. 또한 지난 10년간 EU와 한국은 개별적으로뿐만 아니라 협력 파트너로서도 다양한 도전에 직면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양측은 다양한 사안에서 의견을 공유하며 여러 형태의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한 첫 예시는 2022년 11월 출범한 ‘한-EU 디지털 파트너십’이다. 이는 기존의 FTA를 보완하는 협정으로, 디지털 무역을 위한 현대적이고 구속력 있는 규정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무역 활성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흐름 확보와 데이터 혁신, 디지털 신뢰 구축, 표준 정립, 근로자의 디지털 역량 강화, 데이터 현지 저장 요건 금지, 기업·공공 서비스의 디지털 전환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규정은 기업에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온라인 환경을 제공하며, 디지털 무역 장벽에 대응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본 협정 체결 이후 양측은 매년 ‘디지털 파트너십 협의회’를 개최해 포용적이고 회복력 있는 디지털 전환을 위한 협력 강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3년 5월에 체결한 ‘한-EU 그린 파트너십’(Green Partnership)도 좋은 사례다. 그린 파트너십은 기후 행동, 청정하고 공정한 에너지 전환, 환경 보호, 기타 녹색 전환 분야에서의 협력을 심화하고 모범 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결성된 체제다. 또한 2024년 11월 한국과 EU는 제1차 ‘한-EU 전략대화’를 개최해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발표하며 공동 안보 현안에 대한 새로운 협력 시대를 열었다.

2023년 12월 개최된 제1차 한-EU 공급망산업정책대화(산업통상자원부 제공)

EU가 주목하는 경제안보와 한국의 역할

최근 몇 년 동안 경제안보는 EU의 주요 관심사로 부상했다. EU는 견고하며 다변화된 가치 사슬을 확보하고 과도한 의존에 따른 취약성을 줄이고자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보호(protect), 촉진(promote), 협력(partner)의 3P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은 EU의 최적의 파트너 중 하나다. 양측은 경제 안보, 공급망 회복력, 산업 탈탄소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023년 12월 제1차 ‘한-EU 공급망산업정책대화’를 개최했다. 양측은 해당 대화를 기반으로 양자·다자 협력을 통해 주요 산업의 공급망 교란을 조기에 탐지하고 대응하기 위한 조기경보시스템(EWS)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나아가 한국과 EU는 평상시 정보 공유를 제도화하고 중요 물자의 조달원을 다변화하며 위기 시 유연한 조달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를 위해 EU-미국, EU-인도 간의 무역기술위원회(TTC)와 유사한 형태로 EU-한국 간 TTC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겠다.
경제안보 제고 차원에서는 경제적 강압 조치에 공동의 대응 또는 상호 조율된 조치를 추진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은 반도체뿐만 아니라 6G, 인공지능(AI), 로봇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EU 및 회원국들과의 경제안보 협력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특히 한국은 전기차 배터리와 친환경 선박 등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는바 핵심 광물 의존도 축소와 탄소 배출 저감 등을 목표로 하는 EU의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과 ‘EU 배터리 규정’(배터리 및 폐배터리에 관한 규정) 시행으로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출처: 유럽외교협의회(ECFR), 2024.11

향후 과제

유럽외교협의회(ECFR)의 최근 여론조사1에 따르면 한국과 유럽 시민은 이미 주요 현안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나타났다. 예컨대 트럼프 행정부의 민족주의적 무역 정책에 따른 경제적 위험 증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안보 위협,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으로 무장한 중국 생산업체들 등 기타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따른 경쟁 심화에 대한 입장이 유사했으며 현재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양측의 협력 여지는 오히려 더욱 확장되고 있다.
양측 간 협력 강화를 위해 새로운 제도적 장치를 반드시 도입할 필요는 없다. 이미 기반은 마련됐고 이제는 실행 단계로 나아갈 시점이다. 양측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행동으로 각자의 약속을 현실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EU와의 협력은 한국에 명백히 이익이 되는 행동이며 이는 정권에 관계없이 지속돼야 한다. 양자 협력을 넘어 한국은 한국의 외교 전략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EU의 인도-태평양 전략 등 주요 정책 이니셔티브에도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또한 EU 전체뿐 아니라 개별 회원국과의 협력도 강화해야 하며 이러한 다층적 협력은 특히 안보 분야에서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끝으로 한국과 EU는 WTO 등 다자 및 복수국 간 협의체에서 공동 보조를 취해 온 오랜 경험을 적극 활용해 디지털 무역, 녹색 전환, 공급망 회복력 등의 의제를 국제 무대에서 함께 이끌어 갈 필요가 있다.

  • 1.https://ecfr.eu/article/polls-peril-and-partnership-why-south-korea-and-the-eu-are-natural-allies/
불확실성의 시대를 넘어서는 한일 협력의 방향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일본 와세다대학교 교수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취임 연설에서 ‘상식의 혁명’을 촉구하며 관세를 중심으로 하는 강경한 무역 정책을 예고했다. 전 세계의 다양한 공급망이 복잡하게 연결된 글로벌 경제는 전례 없는 불확실성을 직면하게 됐다. 산업재의 주요 공급국인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미국 시장의 리스크 완화, 경제 안보를 위한 기술 보호,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과의 경쟁이라는 도전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 안보 강화: 공급망 회복력과 기술 방어

단기적으로 일본과 한국은 각각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미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위기에 대응하고자 한다. 그러나 미국의 거대한 시장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과도한 비용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사업 운영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반면 이러한 환경이 일본과 한국 간 미국 내 협력의 기회를 낳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예컨대 한국의 첨단 반도체 현지화 투자는 일본의 부품·소재·장비 공급업체에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일본의 전기차(EV) 제조업은 한국의 배터리 공급업체의 지원을 받는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공급망 회복력 강화를 위해 핵심 광물, 영구자석, 의약품용 항균물질 등 주요 자원의 공급원 다변화 차원의 한일 간 파트너십이 필수적이다. 이미 LNG(액화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을 통한 가격 협상력 확보 노력이 진행 중이지만, 자원 공급원 다변화 움직임은 경제 안보의 목적 아래에도 추진되는 중이다. 공급망 회복력 강화를 위한 3대 정책 패키지를 구현하면서 한국은 공급망 위험 요소를 모니터링하는 ‘조기경보시스템’(EWS)을 구축했고 일본도 이러한 체계를 자국 정책에 반영했다. 양국의 EWS 기반 정보 교류는 아직 제한적이나 절실히 필요한 사항이다. 양국 간 안보 강화는 물론 신뢰 형성의 기반으로 작동할 잠재력을 갖춘 협력 방안이기 때문이다.
분단국가인 한국은 국가정보원(NIS)을 중심으로 주요 인프라와 핵심 기술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 등 다양한 위협에 대비해 왔으며 일본도 뒤늦게 대응에 나서 2024년에 산업 진흥, 보호, 파트너십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하는 데 이르렀다. 한편 보안인가 제도가 도입되며 민간인을 포함한 정부가 보유한 핵심 정보에 접근 가능한 자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또 광범위한 대기업 면담을 통해 기술과 영업기밀 보호를 위해 선도 기업들이 취하고 있는 우수 사례를 취합·배포했다. 이외에 한일의 민간 부문에서 제3자 위협 관련 정보 교류를 시행한다면 당사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성장 잠재력 발굴: 공동 연구와 인적 자본 투자

외국의 기술을 학습해 도입하는 ‘캐치업’(catch-up) 시대를 지나 한국은 이제 세계적인 연구개발(R&D) 선도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고부가가치 제품의 대량생산 영역에서 중국이 한국의 기존 위치를 대체한 가운데 한국의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이 한계를 드러냈다. 경쟁력을 복원하기 위해 ‘패스트 무버’(fast mover)로의 전환이 요구되면서 한국은 선진국과 기초 연구와 시장 창출을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2023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는 네 가지 사항 ①인재, 소재, 장비, 데이터의 국가 간 교류 ②필요한 장비와 인재에 대한 원만한 접근성 ③기밀 정보 접근을 위한 공통 절차 마련 ④비기밀 장비와 인적 자원의 자유로운 교류 활성화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 3국 간 공동 연구 활동은 수소 정제·저장, 수소 운반체용 촉매 소재, 지진 위험 모델링, 에어로졸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 등에 집중될 예정이다.
또한 한일 양국은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터 진흥 정책을 각각 발표했지만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연구 인프라와 시장 기반이 부족해 제약이 많다. 이에 따라 양국은 로봇과 AI의 접목 등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하고 있으며, 앞서 언급된 네 가지 합의 사항들을 양자 간 활용해 해당 부문 협력 강화에 적용할 수 있다.

성숙 경제를 위한 서비스 중심의 시장 통합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로 경제 발전을 이뤄왔으며 이는 국민적 자부심과 낙관적 미래 전망을 견인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콘텐츠 산업(게임, 드라마, K-pop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패션, 화장품, 식음료 등의 분야에서도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또한 SNS 분야에서 일본은 한국 기업의 최대 해외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 적자에 대해 불만을 토로해 왔지만 위 그래프에서처럼 일본이 한류 콘텐츠와 지식재산 서비스 부문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통합에서도 서비스 부문은 핵심 역할을 해 왔고 한일 양국도 소득 수준이 수렴하면서 유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문화적 근접성과 유사한 인구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양국은 이웃나라로서 자연스러운 서비스 산업 무역 파트너다. 양국, 특히 한국은 자영업 중심의 소상공인이 서비스업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 부문의 고용·사회적 파급력은 제조업 이상일 수 있다. 게다가 서비스업은 제조업보다 규제가 덜해 시장 확장 가능성도 크다. 이러한 종합적인 상황은 양국이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속에서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핵심 요소를 담고 있다.
최근 한국 정책결정자들은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으나 협상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마련이며 양국에 모두 농산물 시장 개방 등 정치적 제약도 존재한다. 따라서 디지털 산업과 개인 서비스 분야를 포괄하는 고위급 디지털 무역협정이 더 현실적이고 유망한 방향이 될 수 있다. 관광 산업에서 보듯이 서비스는 사람 간 상호작용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문화적·사회적 유사성을 부각하고 상호 이해를 증진할 수 있다. 역사적 갈등이나 영토 분쟁 등의 논쟁적 사안들은 구분해서 다루어야 할 필요성을 고려하고 서비스 부문이 내포하는 잠재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